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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지고서도 다시 피는
​붉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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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저작권 보호 대상입니다.

만개한 무궁화의 꽃심을 들여다 보면, 꽃 속에 또 다른 붉은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붉은 마음처럼.
밤에 꽃이 흘러도 아침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는 무궁화는
스스로의 통증을 토로하는 아름다운 용기를 내신 김학순 할머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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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학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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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저작권 보호 대상입니다.

1924년 만주에서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난 김학순 할머니.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평양에서 자라셨습니다.

17세 때, 일하기 위해 중국에 가는 도중, 일본군 위안부로서 끌려가셨습니다.
위안소에서 고통 속에 있을 때 한 한국인 남성과 만나, 그 사람의 도움로 겨우 위안소를 탈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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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된 그 남성과 함께 중국 곳곳에서 장사를하면서 생활하고,
한국 독립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해방 후 한국에서도 힘든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1990년에 일본 정부가 "군위안소는 민간업자의 단순한 상행위이며, 군 위안부는 업자가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군의 관여를 부인한 것을 알게 된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증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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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TV에서 일장기를 볼 때마다 열받았고 정신대라는 단어만 들어도 숨쉬기가 힘들어 이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피나는 한을 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 청춘을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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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수요일 시위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의 선두에 서서 스스로 관련 있는 연극에도 출연해 열정적인 인생을 보내셨습니다.

8.14 일본군 위안부 기념일은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증언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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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 사실을 밝혀야 하니까"

아름답고 당당하게 피는 한 송이의 무궁화처럼
생명 있는 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셨던
김학순 할머니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 故 김학순 할머니께서는 1997년 12월 16일에 별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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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MOND

꽃 할머니 프로젝트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서 용기를 내어 인권 운동가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개개인의 삶과 모습을 클로즈업 하는 휴면 블랜딩 프로젝트입니다.
개개인의 삶에 맞는 고유의 꽃을 헐정함으로써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말해준 정의와 평화의 메세지, 그리고 할머니의 삶이 영원히 존경받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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